유럽 주요국 양자기술 전략 비교: 독일, 프랑스, 영국

양자기술은 전 세계적으로 새로운 산업 경쟁의 핵심 분야로 부상하고 있으며, 유럽 주요국들 또한 이 흐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특히 독일, 프랑스, 영국은 각각 자국의 과학기술 역량과 산업 특성에 맞춘 양자기술 전략을 수립하고 있으며, 정부 주도의 대규모 투자와 함께 민간 기업 및 연구기관과의 협업을 통해 독자적인 생태계를 구축 중입니다. 이 글에서는 유럽의 대표국가 세 곳이 어떻게 양자기술을 바라보고, 어떤 방식으로 기술개발과 상용화를 추진하는지를 비교 분석합니다.

유럽 주요국 양자기술 전략 비교: 독일, 프랑스, 영국


독일: 제조업 중심 양자컴퓨팅 상용화 전략

독일은 유럽 내에서 가장 강력한 제조업 기반을 갖춘 나라로, 양자기술을 산업 디지털화와 제조혁신의 수단으로 보고 접근하고 있습니다. 독일 정부는 2021년 “양자기술 2030 마스터플랜”을 발표하며, 양자컴퓨팅, 양자센서, 양자통신 분야를 국가 전략기술로 지정했습니다. 특히 양자컴퓨팅에 집중적인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100억 유로 규모의 공공 및 민간 자금이 향후 10년간 투입될 예정입니다. 이 중 상당 부분은 독일항공우주센터(DLR) 산하의 양자연구소, 프라운호퍼 연구소, 막스플랑크 연구소 등 세계적인 연구기관의 인프라를 활용해 양자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 개발에 사용됩니다. 2023년 IBM은 독일 슈투트가르트에 유럽 최초의 상업용 양자컴퓨터 ‘IBM Quantum System One’을 설치하며, 독일 정부와 협업을 통해 양자 기술을 제조업 및 자동차, 제약, 물류 산업과 접목하는 파일럿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이는 독일이 양자기술을 실험실에서 벗어나 실제 산업 현장으로 가져오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입니다. 또한, 독일은 유럽연합 내에서도 중심적인 역할을 맡아 유럽공동양자이니셔티브(EuroQCI)를 통해 유럽 전체의 양자통신 인프라 구축에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국가 전략 기술로서의 통합적 접근

프랑스는 양자기술을 국가 안보, 과학기술 주권, 경제 성장의 핵심 분야로 인식하고 있으며, 중앙정부의 전폭적인 정책 지원을 기반으로 전략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2021년, 마크롱 대통령은 "프랑스 양자기술 국가 전략"을 직접 발표하며, 향후 5년간 총 18억 유로(약 2조 6천억 원) 이상을 투입할 계획임을 밝힌 바 있습니다. 프랑스 전략의 가장 큰 특징은 ‘통합성’입니다. 즉, 기초과학, 기술개발, 산업화, 인력양성을 하나의 생태계로 묶어 동시에 육성하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CEA(프랑스 원자력 및 대체에너지청), CNRS(국립과학연구센터), INRIA(프랑스 디지털과학연구소) 등 국가 주요 연구기관들이 협업하고 있으며, 기업 파트너로는 아토스(Atos), 탈레스(Thales), 파스칼(Pasqal) 등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프랑스는 양자 시뮬레이터와 중간규모 양자컴퓨터 개발에 주력하고 있으며, 초전도 큐비트 및 중성원자 기반 기술에서 두각을 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스타트업 ‘Pasqal’은 중성원자 기반 양자컴퓨터를 세계 최초로 상용화 단계로 끌어올리며 주목받고 있습니다. 또한, 프랑스는 양자통신에서도 유럽우주국(ESA)과 협력해 위성기반 양자암호 기술 개발에 착수하고 있으며, 이는 군사적 보안 및 외교적 영향력 확대 측면에서도 중요한 전략적 자산으로 간주됩니다.

영국: 기술 상업화에 초점을 둔 생태계 구축

영국은 과거부터 양자물리학 기초 연구에서 강세를 보여왔으며, 이를 토대로 최근에는 기술 상업화와 창업 중심의 전략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2013년 시작된 UK National Quantum Technologies Programme(NQTP)은 지금까지 총 10억 파운드(약 1조 6천억 원) 이상이 투입되었으며, 2033년까지 장기 계획으로 지속될 예정입니다. NQTP는 4개의 양자허브(Quantum Hubs)를 중심으로 각기 다른 기술 분야에 특화된 연구개발을 진행하고 있으며, 옥스퍼드, 캠브리지, 브리스톨, 임페리얼칼리지 런던 등 세계적 대학들과 연계해 인재 양성과 창업 지원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영국 정부는 민간 투자 유치를 적극 유도하여, 2024년 기준 양자 스타트업 투자액이 유럽 내 최상위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대표 기업으로는 Quantum Motion(양자칩), Orca Computing(광자 기반 양자컴퓨팅), ArQit(양자암호) 등이 있으며, 이들은 글로벌 기업과 협력하거나 나스닥 상장을 목표로 성장 중입니다. 또한 영국은 양자 보안통신 분야에서 NATO 및 미국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으며, 국방 및 금융보안에 특화된 기술 개발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양자 기술을 단순히 연구개발로 그치지 않고, 실제 응용과 상업화까지 이어지는 구조를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 전략적 깊이가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독일, 프랑스, 영국은 각각의 산업구조와 기술 역량에 따라 서로 다른 양자기술 전략을 취하고 있습니다. 독일은 제조업과 연결된 실용화 중심, 프랑스는 국가 통합 전략 기반의 과학-산업 연결형, 영국은 창업과 시장 중심의 상업화 전략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다변화는 유럽 전체 양자기술의 균형 잡힌 발전에 기여하고 있으며, EU 차원에서도 EuroQCI, Horizon Europe, EU Chips Act 등을 통해 공동 연구 및 기술 표준화 노력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다만, 미국과 중국의 급속한 기술 진전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개별 국가 수준의 경쟁력을 넘어 유럽 차원의 전략적 통합과 협력이 더욱 중요해질 것입니다.

양자기술은 단순한 미래 기술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세계 각국의 전략과 경제 안보를 재편하는 핵심 동력입니다. 한국 또한 유럽의 다양한 전략을 참고해, 정부-산업-학계가 함께 참여하는 독자적 생태계 구축이 시급한 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