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주의에서 보는 다중세계
현대 과학이 제시한 다중세계(multiverse) 이론은 양자역학과 우주론을 통해 우리 현실의 개념을 완전히 재정의하고 있다. 동시에, 철학 특히 실존주의(existentialism) 전통은 오랫동안 인간 존재의 주관성과 선택, 불안, 자유의지를 다뤄왔다. 이 글에서는 실존주의의 핵심 사유와 다중세계 이론이 어떤 방식으로 철학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지를 고찰하며, 우리가 '존재한다'는 것의 의미가 어떻게 확장될 수 있는지를 살펴본다.
실존주의 핵심 개념: 선택, 자유, 책임
실존주의는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중반에 걸쳐 유럽에서 철학적 흐름으로 정립되었으며, 키르케고르(Søren Kierkegaard),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사르트르(Jean-Paul Sartre), 카뮈(Albert Camus) 등이 주요 사상가로 꼽힌다. 실존주의는 인간의 본질을 '선택하는 주체', 즉 자기를 스스로 형성해나가는 존재로 본다. 본질은 선천적인 것이 아니라, 실존을 통해 후천적으로 구성된다는 것이다.
사르트르는 『존재와 무』에서 “존재는 본질에 앞선다”는 명제를 통해, 인간이 자신을 스스로 정의하는 유일한 존재임을 강조했다. 이러한 입장은 인간의 '자유'를 강조하지만 동시에 그 자유에 따르는 '책임'과 '불안'도 수반한다. 어떤 것도 필연적인 선택이 아니며, 모든 결정은 ‘나’에 의해 이루어진다. 이 절대적인 자유 속에서 인간은 끊임없이 선택하고, 그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한다.
즉, 실존주의에서의 인간은 단일하고 고정된 존재가 아니라, 매 순간 선택을 통해 자신을 창조하는 존재다. 그리고 이러한 선택의 연속성 속에서 자아가 구성된다. 그렇다면, 이 실존적 선택이 다중세계 개념과 만나게 될 때 어떤 철학적 함의가 발생할까?
다중세계 해석의 개요: 무수한 ‘선택된 나’들의 우주
다중세계 해석은 1957년 휴 에버렛(Hugh Everett III)이 양자역학의 ‘파동함수 붕괴’ 개념에 반대하며 제시한 해석 방식이다. 그는 관측 시 하나의 현실만이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모든 결과가 각기 다른 세계에서 동시에 실현된다고 보았다. 즉, 측정이나 선택이 일어나는 순간 우주는 분기하며, 그 선택의 모든 가능성이 각각의 평행우주로 나뉘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은 우리가 단일한 현실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가능한 현실이 존재하며, 우리는 단지 그 중 하나의 흐름을 경험하고 있을 뿐이라는 관점을 제시한다. 이는 곧, ‘내가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땠을까’라는 인간의 보편적 질문에 과학적으로 ‘그 선택 또한 실현되었으며, 다른 세계에서의 당신이 그것을 살아가고 있다’는 답을 제시하는 셈이다.
이 해석은 실존주의에서 말하는 '선택의 절대성'을 완전히 바꾸는 사고를 제공한다. 내가 내린 결정은 유일한 것이 아니며, 다른 세계에서는 내가 전혀 다른 결정을 내리고 살아가고 있다는 전제를 받아들이게 된다. 그렇다면, 실존주의적 자유와 책임은 어떻게 해석될 수 있을까?
실존주의와 다중세계의 철학적 접점
실존주의는 선택의 고통과 책임을 강조한다. 하지만 다중세계 해석이 개입되면, ‘모든 선택이 어딘가에서 실현된다’는 전제가 생긴다. 이는 실존주의의 절대적 책임성과 충돌하거나, 혹은 전혀 새로운 방향으로 확장될 수 있다.
첫 번째로, 이론적으로 모든 선택이 실현된다면, 한 개인이 내린 어떤 결정도 절대적일 수 없으며, 이는 실존주의에서 말하는 '진정성 있는 선택(authentic choice)' 개념을 희석시킬 위험이 있다. 내가 어떤 길을 택하든, 다른 나 역시 다른 길을 택했기에 ‘나의 결정’이 갖는 무게가 줄어드는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 무한한 가능성 속에서도 내가 인식하고 실현하는 이 한 세계, 한 선택은 더욱 유일하고 절실한 것이 된다. 왜냐하면, 비록 다른 나들이 존재할지라도, 나는 이 현실에서 지금 이 선택을 직접 경험하고 있으며, 그 결과에 대해 의식적으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실존주의는 단순히 결과의 유일성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자의 ‘의식적 개입’과 ‘책임 있는 수용’을 강조한다.
즉, 다중세계적 구조 속에서 실존주의는 ‘가능성의 무한성’을 배경으로 ‘의미 있는 현재’를 살아가는 태도에 집중할 수 있다. 하이데거의 표현을 빌리자면, 존재는 '세계-내-존재(Dasein)'이며,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만 정의된다. 따라서 수많은 세계가 존재하더라도, 이 세계 속에서의 나의 선택은 절대적인 실존적 진정성을 요구받는다.
자아의 분기와 실존의 불안: 새로운 인간 이해
다중세계 해석이 전제하는 ‘분기된 자아들’은 실존주의에서 말하는 자아 통일성(self-identity)을 흔든다. 사르트르는 인간을 ‘스스로를 창조하는 존재’라고 했지만, 다중세계 해석에서는 이러한 자아 창조가 분기와 확산의 형태로 발생한다. 이로 인해 인간은 하나의 자아가 아닌, 수없이 많은 가능 자아들의 총합이라는 개념으로 확장된다.
이러한 개념은 ‘존재의 불안(anxiety of existence)’을 심화시킬 수 있다. 내가 지금까지 나라고 믿어온 정체성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수많은 나 중 하나의 모습일 뿐이라면, 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진짜 나’를 설정해야 하는가? 실존주의에서 말하는 자기 성찰은, 이러한 다중 자아 구조 속에서도 여전히 유효할까?
실존주의는 이에 대해 ‘의식적인 선택과 그에 따르는 책임’이야말로 자아의 핵심이라고 본다. 즉, 내가 경험하고 있는 이 순간에 진지하게 임하고, 그 결과를 받아들이며 책임지는 태도야말로 실존적인 삶이다. 다중세계 속에 수많은 내가 존재하더라도, 이 세계 속 나의 선택과 행동은 실존적 의미를 잃지 않는다.
오히려 이러한 다중세계적 사고는 인간의 자유의 범위를 확장시키고, 그 안에서 진정한 선택의 의미를 재조명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결국 실존주의는 다중세계 이론과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개념을 철학적으로 통합하고 확장해나갈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다.
결론: 무한한 가능성과 현재의 실존
‘실존주의에서 보는 다중세계’는 인간 존재에 대한 전통적 사고와 현대 과학 이론이 만나는 지점이다. 실존주의는 인간이 자기 삶을 창조하고, 선택을 통해 의미를 구성해나가는 존재라고 본다. 다중세계 이론은 이러한 선택이 단일한 결과가 아닌, 수많은 분기로 이어진다는 새로운 구조를 제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존주의는 우리가 지금 여기에서 내리는 선택, 우리가 살아내는 삶의 방식이 여전히 유일하고 의미 있다는 철학적 토대를 제공한다. 오히려 다중세계는 ‘모든 선택이 가능한 세계’라는 전제 속에서 ‘지금 이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실존주의적 물음을 더욱 명확하게 만든다.
결국, 실존주의와 다중세계 해석은 상충되는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인 시각일 수 있다. 인간은 무한한 가능성 속에서 하나의 길을 걸으며, 그 길을 의식하고 책임지는 존재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실존은 다중세계 속에서 더욱 빛나는 것이 된다.